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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24.07.17 - 다른 사람의 삶 엿보기[편집실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론 누군가를 염탐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요, 다른 사람의 삶이 담긴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특히 나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나는 생각도 해보지 못한 직업을 가진 사람의 아야기에 관심이 갑니다 그래서 신문을 볼 때 그런 기사를 가장 먼저 찾아 읽고 신간이 나오면 그런 사람들이 쓴 책을 일부러 찾아봅니다

 

가자로 일을 하면 다양한 사람을 만날 것처럼 보이지만 기대만큼은 아닙니다. 취재 분야가 정해져 있으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출입처 담당자를 만나고, 관련 전문가를 만나는 것이 전부일 때가 더 많습니다. 부지런히 취재한다고 해도 만나는 사람의 폭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서장이 되어 담당 분야 없이 부원들을 닦달하는 업무만 맡으면 만나는 사람은 더 적어집니다. 그래서 요즘 다른 사람의 직업이나 삶에 관심이 더 많아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내 삶의 지평이 젊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20년 넘게 오가는 출근길의 풍경이 달리 보이기도 합니다. 내 마음 안에 옹졸하게 숨어있던 편견이 조금씩 줄어들 때도 있습니다. 물론 때로는 내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을 하고 살아왔는지 반성하기도 합니다.

 

올해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다른 사라므이 이야기는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나온 <인생은 예측 불허:나의 노점 이야기>입니다. 부제가 말하는 대로 저자 유의선씨가 잉어빵에서 시작해 떡볶이, 휴대전화 케이스 등의 노점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생생한 경험담과 함께 노점상들의 속사정을 가감 없이 전해줍니다.

 

정작 이 책을 읽고 난 뒤 머릿속에서 가장 오랫동안 남은 이야기는 노점이 아니었습니다. 유씨가 노점 이야기를 하다 지나치듯 전해준 노숙인 이야기였습니다. 유씨는 사회운동을 하던 시절 노숙인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밥도 같이 먹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노숙인 아저씨들과 삼계탕을 끓이기도 하고 장을 보러 가는데 아저씨들은 '도라지를 사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씨가 '삼계탕에 황기나 인삼이 아니라 도라지라고요?'라고 되묻자 아저씨들은 '도라지를 넣는 게 맞다'라고 다시 말합니다. 유씨는 이유를 알아챕니다. 아저씨들은 평생 삼계탕에 비싼 인삼을 넣을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유가 생기더라도 '삼계탕에는 도라지'가 정석 조리법으로 굳어진 겁니다. 이 작은 에피소드를 일고 저는 다시 한번 제 경험의 폭이 얼마나 좁은지 실감했습니다.

 

주간경향 이번 호에도 삶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대통령의 탄핵과 조기 대선을 주장하는 목소리, 최근 잇따른 사고로 논란이 된 고령 운전 문제, 북한에 있는 동생에게 돈을 보냈다가 기소된 북한이탈주민, 이른바 '영피프티'에 화가 난 청년들, 문화예술인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현장 등. 이 이야기들이 독자 여러분의 삶에 작은 파장이라도 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