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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4.07.15 - [충무로에서] 신뢰 잃은 누더기 청약제도

요즘 주변을 보면 청약통장을 해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청약통장은 언젠가는 당첨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납입하게 된다. 그런데 다들 통장을 깨는 것을 보니,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실제로 통계를 보니 청약통장 가입자는 확연한 감소세다. 2년 전만 해도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가 2703만 명대였는데 현재 2554만 명이다. 2년 새 148만 명 이상 줄었다. 분양가가 올라서 당첨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가 낮아진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청약이 외면받는 이유는 또 있다. 청약제도가 너무 자주 바뀌면서 청약제도가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5월 이후 청약제도는 35차례 변경됐다. 청약제도의 기본 제도인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이 13번, 공공주택 공급 관련 법인 '공공주택특별법'은 10번, '특별법' 규칙이 12번 바뀌었다. 주택법 개정사항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많다.

 

전 정권에서도 청약제도는 수십 번 바뀌었다. 청약과 관련된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은 이명박 정부에서 47차례, 박근혜 정부에서 37차례, 문재인 정부에서 65차례 개정됐다. 정부는 그때그때 시장 분위기에 따라 청약제도를 바꾼다. 기존 제도를 믿고 점수를 쌓아온 사람들만 피해자다.

 

집값이 무섭게 오르던 2020년, 그때도 정부는 수도권 청약 과열을 막겠다며 청약 우선 요건을 거주 1년에서 2년으로 갑자기 변경했다. 거주 기간 1년을 채웠던 수요자들은 갑작스러운 제도 변경으로 1순위를 놓쳐 청약에 실패했다.

 

정부는 대책을 발표하면 그만읻다.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 몫이다.

 

이번 정부 들어서는 저출산을 해결 대책으로 청약제도를 개편하고 있다. 신생아 특별공급과 우선공급, 청년 특별공급을 늘리고, 추첨제를 확대하는 식이다. 지난달에는 공공분양 일반공급에서도 50%는 신생아 가구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매달 최대 한도를 저축하며 점수를 쌓아온 실수요자들은 화가 치민다. 당첨될 줄 알았는데, 일반공급 물량은 자꾸 줄어든다. 게다가 정부가 청약저축 한도를 월 25만 원으로 2.5배 인상하겠다고 한다. 당첨의 길은 좁아지고, 납부할 금액은 배가 됐다.

 

청약 대기자들은 여기서 또 한번 고민하게 된다. 정부를 믿고 저축 한도를 25만 원으로 늘리려다가도, 앞으로 또 청약제도가 바뀔까봐 걱정된다. 이런데도 청약통장을 유지해야 할까.

 

현재의 '누더기식' 청약은 청약제도의 취지를 크게 훼손하고 있다. 청약의 공정성은 신뢰에서 나온다. 이렇게 획획 바뀌는 청약은 신뢰하기 어렵다. 청약제도의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청약통장이 있네. 자동이체 해놨던게 기간 만료돼서 더 이상 돈은 넣고 있지 않았는데 급하면 빼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