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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4.07.14 - [매경춘추] 바닷길

바다에는 길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길이 있다. 육지에서의 길은 모두 눈에 보이지만, 바다에서의 길은 보이지가 않는다. 해도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선장이 출항하기 전 선택하여 해도에 선을 그으면 자신의 배가 이번 항해에 다녀야 하는 길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이 순간에도 바다에는 수많은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항구 혹은 항구 근처에는 고정된 길이 있다. 선박의 통항이 많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예외적으로 만들어 선박 충돌 사고를 줄이려는 목적이다.

 

북태평양의 바닷길은 크게 두 가지다. 항정선 항법이다. 북위 35도를 쭉 다라서 항해하는 길이다. 다음으로 대권항해가 있다. 가장 짧은 길을 이용하는 항해다. 지구의 중심과 두 지점을 지나도록 하면 지구상에 선이 그어진다. 그 선이 가장 짧은 거리인 대권이라는 것을 선장들이 알게 됐다. 알래스카 쪽으로 올라가서 미국 서부로 가는 길이다. 북위 35도에서 출발해 북위 60도까지 올라가게 된다. 항정선 항법 보다 2~3일이 더 짧은 항해를 달성할 수 있다.

바닷길은 예상외 변수에 따라 상황이 변동한다. 태풍이 불면 바다 자체가 요동을 친다. 육지에서의 길은 그대로 온전히 존재하는 것과 큰 차이가 난다. 처음에 기획했던 항로에서 벗어나 사용하기로 했던 길의 위로 아래로 항해하기도 한다.

 

모든 바다를 마음대로 다 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다닐 수 없는 길이 바다에는 있다. 해도에 수심이 표시되지 않은 곳은 항해할 수 없다. 측량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주 북단에는 아직도 측량되지 않은 곳이 많다. 안심하고 다니는 바닷길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시험된 다음에 채택된 것이다. 1492년 콜럼버스의 대항해시대 이래로 어느 항로가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은 다음 입으로 입으로 전해져서 선장들이 그 길을 택하게 되면서 새롭고 안전한 바다의 길이 하나씩 열리게 된 것이다.

 

바다에도 지름길이 있다. 수에즈 운하가 좋은 예다. 사람들은 더 가깝고 안전한 길을 찾아 나섰다. 희망봉을 돌아서 아시아로 가는 것은 시간도 걸렸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남단을 돌아 항해할 때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로 인해 목숨을 건 항해를 피하고자 했다. 수에즈 운하로 인해 시간이 단축되면서도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다. 인류가 인위적으로 만든 지름길인 운하를 활용하는 길은 인류에게도 축복이다. 최근 후티 반군이 항해하는 상선을 공격해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사용할 수 없는 지경이다. 긴 항해를 하면서 선박이 부족해서 물류대란이 다시 일어났다. 사람들은 도 다른 지름길인 북극 항로 개척에 나서고 있다.

 

육지에서 고속도로라는 길이 뚫리면서 경제 발전이 일어났다. 대항해시대 선장들에 의해 미지의 바닷길이 열렸다. 상품의 교역이 바닷길을 통해 이뤄지기 시작했다. 낙타를 이용한 운송보다 수천 배나 많은 물량의 이동이 선박을 통해서 가능해졌다. 세계회를 통해 각국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품을 수출하고 수입했다. 이 일은 바다의 길을 이용한 해운이 담당해 왔다. 무역을 가능하게 하는 해운과 바닷길은 참으로 소중하다. 잘 지키고 보호해야겠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前 선장]

 

그 드넓은 바다에 길을 찾아내고 물건을 옮기고 다리를 짓고. 이러한 것을 해내는 거 보면 인류란 참 대단한 것 같다. 특히 옛선조들은 최신 첨단 장비 같은 것도 없었을 텐데 신대륙을 발견하고 바닷길을 낸 걸 보면 놀랍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