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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소꿉친구

어릴 적 친했던 친구 A가 있었다.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 같은 동네에 살던 정말  꼬꼬마 시절의 친구였다.

(친구 부모님 우리 부모님, 형제 자매까지 다 친한 사이)

이 A는 그당시 잘 볼수 없었던 아주 멋진 소꿉놀이 장난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난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어서 자주 A 집에 갔었다.

같은 동네라 유치원도 같은 곳, 학교도 같은 곳으로 갔다.

매년 학년이 바뀔때마다 같은 반이 되기를 빌었고,

등교, 하교는 물론 그 친구랑 뭐든 같이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A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면 더이상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학교를 마치면 동네 친구들과 저녁이 다 되도록 놀곤 했었는데

A는 엄마의 허락이 없으면 나올 수 없었다.

그래서 창문을 사이에 두고 오늘은 놀 수 있냐고 묻고 했는데 거의 안된다는 대답뿐이었다.

결국 A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만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중학교를 가게 되었고, 1학년 때 옆 반이 되었다.

같은 반은 아니지만 붙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리고 그때 우리 동네로 이사 온 동갑친구 B가 있었는데,  B가 A와 같은 반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셋이서 등하교를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난 B랑도 친해지게 되었다. 

 

A와 B의 담임 선생님은 수학선생님이셨는데 그 선생님은 시험을 치면 학생들에게 채점을 매기게 하셨다.

첫시험을 치고 우리반 시험지를 채점을 했는지 A와 B가 나한테 와서 점수를 알려줬다.

난 만점을 받았다. 그리고 시험칠 때마다 내 수학점수는 만점 아니면 한두개만 틀렸었다.

(중학교 들어가면 첫시험이 중요하다는 선생님들의 말씀에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 그리고 엄마가 강제로 집어넣은

학원이 잘 가르쳐줘서 수학 점수는 좋았다.)

그게 시샘이 났을까. 그때부터 A는 B에게 내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 욕한걸 B는 나에게 알려줬고.

그 당시 나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라 A가 내 욕을 하는걸 알면서도 A에게 따지지 못했고, 평소처럼  지냈다.

A도 내 앞에선 평소랑 다름 없는 친한 친구처럼 행동했다.

나는 매일 B에게서 A가 한 욕을 전해들었고 난 그냥 또 넘어가고..

그러다 A가 우리 엄마, 아빠 욕 하는걸 전해들었다.

난 너무 화가 났고 뭔가 복수를 하고 싶어서 A 비밀을 B에게 말해버렸다.(물론 나도 해서는 안될 행동을 했다)

지금 같아서는 당장 찾아가서 따지고 들었을텐데 (귀싸대기를.. 워워) 그땐 순진하고 어디가서 말도 잘 못하는 그런 소심한 아이라 내 딴에 작은 복수라 생각하며 그 아이 비밀을 말해버렸다. 그 아이 엄마는 새엄마라고...

나도 몰랐다가 그당시 어른들을 통해 A의 엄마가 새엄마라는 걸 듣게 되었다.

원래 할머니랑 아빠랑 셋이 살았는데 할머니가 (저 위의 비싼 장난감도 A의 할머니가 사준신 것) 돌아가시고 A의 아빠가 재혼을 하신거였다. 

너무 놀랐고 충격적이었다.

생각해보니 왜 A가 밖에 나오지 못하고 집에만 갇혀 있었는지,

 A의 엄마가 A의 동생(재혼하시며 낳은 아들)은 엄청 잘해주면서 유독 A한테만 엄하게 구는지 납득이 갔다.

 

그렇게 비밀을 폭로하면서 B에게는 어디가서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근데 B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집에서 놀고 있는데 A의 아빠가 처들어왔다.

내가 A의 엄마가 새엄마라는 걸 말했냐고, 우리 집에 와서는 큰소리를 치며 나를 잡아먹을 듯이 혼을 냈었다.

같이 있던 울 언니가 말리고, 하여튼 난리 아닌 난리가 났었다.

그 뒤로 어른들끼리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넘어가고 (울 엄마, 아빠는 그 일에 대해 아무말씀도 없으셨다.) 난 A와 B랑은 같이 다니지 않았고, 머지 않아 B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생각해보니 그 전에도 나를 안 좋게 말하고 다닌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냥 나혼자 짐작만한거라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도 A랑 같은 반이었는데 그때 담임 선생님이 나를 좀 좋아했다.

왜냐면 엄마가 선생님을 찾아갔었거든. 그 당시는 촌지를 주고 받는 것이 흔했고 

엄마가 학교를 찾아가서 담임한테 얼굴을 비추면 담임 선생님은 그 학생을 좀더 이뻐(?)해줬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 좋아하는 학생들 중 하나였고, A는 엄마가 찾아오지 않아 선생님의 이쁨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마침 산수시험도 반에서 나 혼자만 백점을 받아 선생님한테 엄청 칭찬을 들었었는데

그때도 알게 모르게 내 욕을 하고 다녔고, 시샘이 가득한 눈으로 날 보는 것도 알고 있었다. 

A는 5살 어린 동생이 있었는데, A엄마가 A한테 막대하는 걸 봐서 그런지 A의 동생도 A한테 막대하거나 무시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 A의 동생은 A보다는 나를 더 좋아했고 잘 따랐다.

아마 이런 것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생겼겠지.

 

그렇게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우린 같은 반이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같은 반 됐다고 좋아했을텐데 그 이후로는 같은 반이든 아니든 신경 쓰지 않았다.

난 새로 생긴 친구들이랑 즐겁게 학교를 다녔고, A가 같은 반이었다는 것도 잊을 정도로 A를 의식하지 않았다.

싫다 좋다 정의할 필요도 없이 그냥 말 그대로 무감정이었다.

그냥 같은 반 학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학원을 가고 있는데 A가 앞에서 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날 안으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난 아무 생각없이 그냥 가만히 안겨 있었다.

그리고 A의 아빠도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었다.

 A의 사과도 A 아빠의 사과도 그냥 무덤덤히 듣고만 있었다.

왜 나한테 사과를 하게 됐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A와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 났고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지도 못하고 각자 살아가고 있다.

 

가끔 엄마랑 언니랑 A의 이야기를 한다.

그때 새엄마한테 구박당하며 불쌍하게 컸다며, 지금 어디서 무얼 하는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어른이 되고 세상풍파 여러번 겪어본 지금은 A의 심정이 어땠을지, 사랑 받지 못해서 친한 친구를 질투할 수밖에 없었던 그 어린 아이의 심정이 이해가 되면서 안쓰럽기도 하다.

어디, 어느 곳에서 살든 지금은 사랑 받고 행복하게 살았음 좋겠다.

 

 

그나 저나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가는 내 삶에 드라마 단골 소재로 쓰이는 뻔한 클리세가 나에게 있었던 일이라는게 새삼 놀랍기도 하다.

어린 아이니 귀엽게 봐주지 다큰 어른들이 저랬다면 완전 막장 콩가루가 따로 없다.

앞으로 이런 일은 절대 안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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