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읍지(邑誌)인 '보증 탐라지'는 1707년(숙종 33)의 지진해일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기상용어로 쓰이는 지진해일(地震海溢)이라는 표현이 있어 기상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한자문화권에서 지진해일은 특정한 용어라기보다 문장 속에서 '땅이 울리고 바다가 넘쳤다'는 서술적 표현으로 등장하곤 한다.
'탐라지'는 제주목사 이원진(1594~1665)이 개인적으로 펴낸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의 읍지다. 이것을 바탕으로 후임 제주목사 윤시동 (1729~1797)이 제주의 역사, 지라, 풍속을 자세히 다루어 펴낸 관찬(官撰) 읍지가 '증보 탐라지'다.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낸 이마니시 류가 반출한 것을 후손이 1960년 일본 덴리대학에 기증했다고 한다.
제주의 해일은 호에이 대지진 대문이었다. 일본열도 동남쪽의 도카이(동해)~도난카이(동남해)~난카이(남해) 해곡(海谷)의 단층이 동시에 파열돼 일어난 유일한 지진이다. 후지산이 마지막으로 분화한 것도 이때다.
일본 기상청이 '난카이 해곡 지진 임시 정보'를 발표한 이후 일본열도에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8일 미야자키의 규모 7.1 지진 이후100~150년 간격으로 일어나는 난카이 대지진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호에이 대지진처럼 모든 단층이 한꺼번에 파괴되는 최악의 지진을 우려하고 있다.
제주도는 호에이 대지진 당시 지진과 해일을 감지했지만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제주도 해수면 높이가 0.2m 올라가는 정도였다. 난카이 대지진이 발생하면 제주 송악해변과 남해 광양해변에 0.5m 정도의 해일이 닥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에게 무서운 것은 일본열도 서안의 지진해일이다. 태종실록에는 1415년 '영일에서 길주까지 동해의 바닷물이 최고 50~60척(15~18m)이나 넘쳤다'는 기사가 보인다. 역사적으로 동해안의 해일은 빈도가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부디 큰 지진은 일어나지 않았음 좋겠다. 예전 동일본 지진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또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얼마나 끔찍하나. 자연재해는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보니 무참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연 앞에 한낱 미물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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