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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24.07.10 - [논단]'김건희 문자'에 갇힌 국민의힘 전당대회

보수정치 미래 좌우할 당대표 경선
쇄신 없이 총선 책임론 공방만 가열

 

'김건희 문자'가 느닷없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발단은 얼마 전 CBS 라디오에 출연한 김규완 CBS 논선실장이 지난 1월 김건희 여사가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내용을 공개하면서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김 여사는 당시 한 위원장에게 "당에서 필요하다면 대국민 사과를 포함해 어떤 처분도 받아들이겠다"고 사과 의사를 전했다는 것이다. "사과를 하라면 하고 더한 것도 요청하시면 따르겠다. 한 위원장의 뜻대로 따르겠으니 검토해 주시기 바란다"는 것이 김 여사의 문자 내용이었다고 한다. 총선 당시 여야 간 쟁점이었고 표심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김 여사의 사과 여부에 대해 본인이 진즉에 의사를 전했다는 얘기니까 일종의 반전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당시 한 위원장은 이 문자에 대해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속된 말로 '읽씹'(읽고 무시)했다는 얘기다. 이같은 내용이 사실이라면 지난 총선에서 여권을 수세에 처하게 만들었던 김 여사의 디올백 수수 문제에 대한 사과가 가능했는데도 한 위원장이 묵살해서 불발되었고, 결국 선거 패배를 자초했다는 주장도 가능하게 됐다.

 

실제로 이런 내용이 알려지자 당대표 경선에 나선 다른 후보들은 일제히 한 후보 비판에 나섰다. "당내 논의 없이 뭉갰다"(원희룡), "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었는데 사실상의 해당 행위를 했다"(나경원), "영부인 문자가 왔으면 당연히 응대했어야 했다"(윤상현)는 공격이 한 후보에게 집중되는 형국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한 후보가 독주하고 있지만, 당대표 선출에서 당원 투표가 80%나 반영되는 만큼 당심에 따라서는 변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후보는 "총선 기간 대통령실과 공적인 통로를 통해서 소통했고, 어떤 방식으로든 사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전달한 바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집권당 비대위원장과 영부인이 사적인 방식으로 공적이고 정무적인 논의를 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한 후보의 설명이다.

 

이 논란은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다. 여당 대표가 사적인 방식으로 공적인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한 후보의 설명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교과서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김 여사 본인이 사과 의사를 밝히고 여당의 뜻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전했는데도 이를 무산시킨 책임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 성사될 수 있었던 문제를 불발로 그치게 한 정치력 부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그렇다고 지금 이 문제를 전당대회 이슈로 키우며 한동훈 때리기에 나서는 다른 후보들의 모습도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 가운데 누가 그 무렵에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함을 적극적으로 발언했던가. 더욱이  이 같은 문자 내용이 하필 전당대회를 앞두고 공개된 배경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김건희 문자'에 갇혀버린 집권당 전당대회의 모습이다. 이제까지도 후보들 사이에서는 한동훈 총선 책임론, 당정불화론 같이 '한동훈 대 반한동훈' 혹은 '친윤 대 비윤' 구도의 성격을 드러내는 공방만 전개됐다. 심지어 친윤 성향의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한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까지 검토하면서 '제2의 연판장 사태'우려도 나왔다. 이러다 보니 정작 국민의힘이 어떻게 쇄신하고 새로 태어나야 하는가에 대한 대안이나 비전의 제시는 보이지 않는 선거가 되고 있다. 보수정치의 앞길을 좌우할 당대표를 선출하는 경선으로는 너무도 수준 낮고 콘텐츠가 부재한 선거로 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일극체제'에 대한 비판 여론도 국민의힘이 덮어주고 있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국민의힘에 미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런 이전투구식 전당대회를 치르는 보수정치에 재집권의 꿈이 가능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은 언제나 정신을 차릴 것인가.

 

자기네들끼리 치고 받고 싸우고 난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