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필사하기

한겨레 24.02.18 - 홍대 앞 3대 명절 '경록절'[유레카]

'홍대 앞 3대 명절'이란 게 있다. 1년 중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일대가 가장 시끌벅적해지는 날이다. 바로 크리스마스이브, 핼러윈 데이, 그리고 경록절이다.

 

경록절은 크라잉넛 멤버 한경록의 생일(2월 11일)을 일컫는다. 크라잉넛은 19990년대 중반 "말 달리자"라고 외치며 홍대 앞에 인디 디엔에이를 퍼뜨린 1세대 인디 밴드다. 2005년 초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한경록은 자신의 생일에 동료 음악인들을 불러 모았다. 위축된 인디판에 "으쌰으쌰" 활기를 불어넣고 싶었다. 치킨집을 빌려 맥주를 마시고 누구든 흥이 나면 즉흥 라이브 연주를 펼쳤다. 경록절 잔치는 해마다 이어졌고, 갈수록 규모도 커졌다. 김창완, 김수철, 최백호, 강산에 등 선배 음악인들도 와서 멋들어지게 한 곡조씩 뽑곤 했다.

 

코로나도 경록절을 막을 순 없었다. 2021년에는 음악인들이 각자 집이나 연습실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18시간 논스톱으로 온라인으로 중계했다. 국경을 넘어 미국, 영국, 일본, 러시아, 한국 등 5개국 84팀이 동참했다. 팬데믹이 끝난 지난해에는 온오프라인을 병행해 닷새간의 축제를 펼쳤다. 공연뿐 아니라 강연, 북콘서트, 미술 전시회 등도 열었다.

 

올해 경록절은 지난달 30일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 공연으로 서막을 열었다. 설연휴와 겹친 11~! 2일에는 50여 팀의 온라이니 공연을 선보였다. 13일에는 홍대 앞 무신사 개러지에서 경록절 최초로 유료 공연을 진행했다. 재정적 이유도 있지만, 경록절이 궁금한 일반인들도 맘 편히 와서 즐기라는 뜻도 있었다고 한다. 이날 300명의 관객이 4만 원에 5팀의 공연과 무제한 맥주를 즐겼다. 인터파크 예매자 통계를 보면, 20대 여성이 가장 많았다.

 

마지막 날인 14일에는 초창기처럼 음악 동료와 지인들을 초청해 잔치를 벌였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만든 강승원을 비롯해 박학기, 카디, 팝핀현준(댄서) 박애리(국악인) 부부, 박창근, 강백수 등이 다채로운 축하공연을 펼쳤다. 평소 잔잔한 노래를 들려주던 멜로망스의 정동환은 장발의 로커로 변신해 음 이탈도 불사하는 샤유팅을 내질렀다. 경록절 아니면 만나기 힘든 장면이다. 이제는 인디 문화보다 화려한 유흥가로 더 이름난 홍대 앞을 그래도 홍대 답게 만드는 경록절이 있어 다행이다.

 

크라잉넛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한때 아주 인기 많았었지. 노래방에서 '말 달리자', '밤이 깊었네' 안 부른 사람은 없을 거다. 그동안 가요계도 몇 번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옛 가수들을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이렇게 오프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서울에 살면 한 번쯤 공연에 가보고 싶긴 한데 멀리 있어 가지는 못하고 응원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