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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사이언스 24.02.10 -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들

필자는 몇 해 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병문안을 온 친구네 게 번거롭게 먼 길 오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냥 으레 아니라고 괜찮다고 할 줄 알았는데 친구의 반응은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는 듯 "내가 오고 싶어서 내 발로 왔는데 왜 네가 미안해해?"였다.

 

작은 희생에도 '내가 너를 위해 이런저런 희생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고마워해라' 모드가 되는 것이 보통인데 그렇지 않은 친구가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자발적으로 타인을 위하는 행동을 하고서도 되돌려 받길 기대하고 그게 안 될 경우 금반 서운해하고 후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비교적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이 차이는 뭘까.

 

암스테르담 자유대의 심리학자 프란체스카 리게티는 약 130쌍의 커플들을 대상으로 일주일간 매일매일 두 시간마다 한 번씩 지금의 기분 상태, 파트너를 위해 희생적인 행동을 했는지, 그 행동을 얼마나 후회하는지 물었다.

 

그 결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심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상대방을 위한 작은 희생에도 금방 후회하고 이 때문에 좋은 일을 하고서도 기분이 나빠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렇게 파트너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고 금방 후회하는 경향은 1년 후 삶의 만족도와 관련을 보이기도 했다. 사랑과 관심을 주고 금세 후회해 버릇한 사람들은 그럴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1년 후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발적으로 일상적인 수준의 작은 도움을 준 것으로도 쉽게 후회하는 이유는 뭘까.

 

일반적으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싶고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들이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남달리 많은 노력을 쏟는다. 이 사람이 원하는 게 뭔지, 내가 뭘 어떻게 해야 좋아할지 이렇게 하면 나를 싫어하진 않을지 계속해서 신경 쓰고 딱히 상대방이 요구하지 않아도 뭔가 하려고 하는 등 과한 노력을 쏟는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실제' 도움 행동이나 희생적인 행동에 있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클수록 잘 보이려고 많은 애를 쓰지만 그만큼 그 행동이 좋은 결과를 내지 않을 것에 대한 '걱정'고 '망설임'이 크기 때문이다. 속으로만 치열하게 고민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들보다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노력이 과한만큼 기대 또한 크다. (속으로) 많은 애를 썼으므로 상대방에게도 비슷한 수준의 노력을 기대하지만 노력이 상대에게 겉으로 보이지 않아서 잘 전달되기 어렵거니와 애초에 수준이 과해서 그만큼의 보답을 바기란 쉽지 않다.

 

결국 같은 수준의 희생을 해도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심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기쁨보다 서운함이 더 크다. 관계를 좋게 만들겠다고 애쓴 결과가 행복이 아니라 서운함과 후회, 상처받은 마음이라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또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을 잘 신뢰하지 못하기도 한다. 타인이 사랑과 감사 등 보답의 신호를 보내도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할 리가 없다거나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는 둥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니까 타인이 보답을 해외고 이를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바람에 보답의 효과를 보지 못한다.

 

정리하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클수록 과하게 애쓰는 바람에 그만큼 보답받지 못하거나 보답을 받아도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 서운함만 커진다는 것이다. 

 

혹시 관계에서 이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면 지나치게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만큼 애쓰지 않아도 사실 나의 파트너는 나를 꽤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닌지, 파트너를 향한 나의 신뢰가 낮은 게 문제는 아닌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