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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24.01.27 - [철학 쪽지] 마음이 그렇게 가는 이유

심리학에서는 마음의 원리를 설명한다. 그런데 마음은 논리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철학을 하다 보니 인간이 왜 논리적이지 못한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된다. 생각이 나아가는 방향은 대체로 마음이 편리해지는 방향이다. 마음이 편리해지는 방향은 '내가 옳다'를 확인하는 방향이다. 결국 나 잘난 맛을 확인하는 방향이다. 그러나 나 잘난 맛을 확인하는 방향은 진실과는 멀어지는 방향이기가 쉽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이 편리해지게 하는 얘기는 참이라고 느끼고 마음이 불편해지게 하는 얘기는 거짓이라고 느낀다. 참임이 확인되어서 참이라고 믿는 게 아니라 참이라고 믿고 싶어서 참이라고 믿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믿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믿을 만한 이유를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믿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믿지 말아야할 이유를 찾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타인이 믿고 싶어서 믿는 건 쉽게 파악하는데 자신이 그러는 것은 알기가 어렵다. 스스로는 정말 그렇게 믿어야만 할 이유가 있어서 믿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타인의 비논리에는 부들부들 떠는데 자신의 비논리는 파악조차 못한다. 자신의 비논리를 파악하려면 철학적 성찰을 해야 한다. 철학은 참이라고 믿어야 할 이유가 있으면 참으로 받아들이기를, 그런 이유가 없으면 참으로 받아들이지 말기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렇게 논리를 따르자면 내 맘대로 생각하지 못하게 되니 갑갑해진다. 그러나 마음이 편리해지는 대로, 믿고 싶은 대로 믿다 보면 참이 아닌 것을 믿게 되어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참이 아닌 것을 믿으니 의도했던 결과를 얻지도 못하게 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도 어려워진다.

 

살다 보면 놀랍도록 자기만의 믿음에 빠져 있는 사람을 만나게도 된다. 자신의 믿음을 현실과 맞추어 검증해보지 않고 어떤 믿음에 오래도록 빠져있다면 그렇게 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체로 심리적인 이익이다. 자신이 오래도록 믿어왔던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동안의 믿음을 포기한다는 것은 때로는 그동안의 삶을 부정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고통이다. 그래서 믿어야 할 이유가 있나 없나를 따지는 골치 아픈 일은 그만두고 싶어진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내 마음에 드는 대답만 하라는 태도)로만 살아가고 싶어진다. 남들은 다 답정너여도 나만은 답정너가 아니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타인의 비논리보다 자신의 비논리를 더 잘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 눈에 나의 비논리가 안 보인다고 해서 나는 비논리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생각은 자신의 믿음 총합이 마음을 편리하게 하는 쪽으로 뻗어 나간다. 이 경향성을 지속해서 제어하면서 근거에 따라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적 성찰의 방법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고 내가 싫어하는 사랆이 하는 말이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는 것은 비철학적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자신에 관대하다. 나도 그렇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조언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가 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런 경향이 강해진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가끔 대화가 잘 안될 때가 있다. 그들은 내가 살아온 게 정답인냥 말하고 난 꼰대가 꼰대짓 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래도 난 웬만하면 상대방의 말을 최대한 편견없이 듣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가끔 아주 가끔은 되도 않는 똥꼬집을 피워 나중에 후회하는 일도 생기기도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