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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24.07.23 - [해외칼럼] 맥도날드가 값을 내린 이유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코로나 때 여윳돈 줄자 씀씀이 급감
패스트푸드, 유통 등 할인경쟁 가세
가격 등락, 기업 탐욕 보단 수요 탓

 

 

희소식 한 가지. 마침내 우리가 기업의 탐욕을 꺾었다. 이건 미국 전체에 대단한 희소식이다. 인플레이션을 기업의 탐욕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돈벌이에 혈안이 된 집단이 이타적인 행동을 취했다는 경이로운 사실에 반가움을 표시한다.

 

6월 중순 버거킹이 5달러짜리 '유어 웨이 밀(Your Way Meal)'을 내놓은 데 이어 최근 몇 주 사이 패스트푸드 체인점들이 잇따라 버거 가격을 인하했다. 버거킹에 뒤이어 맥도날드 역시 한시적으로 '밀 딜(Meal Deal)'을 5달러에 제공한다. 이에 질세라 타코벨은 '럭스 크레이빙스 박스(Luxe Cravings Box)'를 7달러에 판매하며 할인 경쟁에 가세했다.

 

이처럼 패스트푸드 체인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가격 인하에 나서는 이유가 뭘까. 로널드 맥도날드(맥도날드의 마스코트)가 널리 알려진 자선사업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기업 이윤을 희생해 가며 소비자들에게 선행을 베풀지는 않는다. 대통령의 지적에 수치심을 느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가격 인하에 나선 것도 아니다. 업계는 그저 소비자 수요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물가가 요동치자 사방에서 기업의 탐욕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당시에도 상품 가격을 끌어올린 주요 동인은 기업의 욕심이 아니라 폭발적으로 늘어난 소비자 수요였다.

 

이른바 '그리드플레이션(greed와 inflation의 합성어)'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경비 상승과 상관없이 기업들이 가격 인상을 위해 인플레이션을 연막으로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기업들은 종종 가격 인상 폭을 생산 경비 증가분보다 높게 책정한다. 그러나 이는 소비자 수요가 높을 대 으레 발생하는 일이다.

 

코로나19 기간 소비자들은 평소보다 풍부한 현금을 손에 쥐고 있었다. 코로나19 지원금 지급 같은 정부의 초대형 경기 부양 정책과 여행이나 외식을 못 하게 하는 경제 봉쇄로 본의 아니게 소비자 지출이 줄어드는 '강제 저축'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봉쇄 해제와 함께 분출한 소비자 수요가 꽉 막힌 공급망과 충돌을 일으키자 기업들은 기다렸다는 듯 가격을 인상했다.

 

코로나19 직후 기업의 탐욕이 갑자기 치솟지는 않았다. 사실 기업들은 욕심을 채우려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가격이 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부풀어 오른 버거값에도 고객들의 주문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유지하거나 웃돌았다. 그나마 얼마간의 여윳돈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타이트한 노동시장이 임금 상승을 압박했다. 이 같은 이유로 소비자들의 주문은 계속 늘어났고 가격은 상승을 거듭했다.

 

이런 현상은 저소득 가구 사이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여윳돈이 사라지자 저소득 소비자들은 가격에 한결 민감해졌고 비필수품 구입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소비자 분석 업체인 뉴머레이터의 자료는 저소득 가구를 중심으로 소비자들이 패스트푸드 식당에 지출하는 비용이 2020년 말~2013년 9월 상승곡선을 그린 후 평평해졌음을 보여준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지출은 사실상 감소했다.

 

맥도날드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이언 보든은 4월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줄어든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모두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소비자들의 매장 방문 빈도는 한결 줄어들었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백병전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병전을 위한 맥도날드의 비밀 병기가 바로 밸류 메뉴다. 지금 우리는 패스트푸드 체인의 '달콤한'가격 경쟁을 맛보고 있다. 가격 조정은 패스트푸드에 국한되지 않았다. 월마트와 타깃 같은 대형 소매점들 역시 발길이 뜸해진 고객의 재유치를 위해 여름맞이 할인 판매에 돌입했다.

 

최근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심한 가격 책정은 옛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해준다. 인플레이션이 주로 기업의 탐욕이나 교활한 행동에 의해 야기됐다면 가격은 계속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상품 가격이 크게 오르면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기업들은 매출 신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가격 인하라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의 경제학 레슨이다.

 

가격이 올라도 어느 정도 납득 가능한 정도로 올려야지 소비가 일어나지 택도 없는 가격으로 올리면 오히려 소비자들은 발길을 끊는다. 안 먹고 말지 하는 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