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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24.06.14 - [여론광장] 버스로 출근, 걸어서 퇴근하는 이유

지난 4월부터 월요일은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주로 121번 버스를 이용한다. 전민동에서 타고 문지네거리와 원촌삼거리를 지나 신세계백화점, KAIST 등을 거쳐 구청 정문 앞에 도착한다. 소요 시간은 평균 30분. 버스 창문을 열고 맞는 아침 바람이 시원하다. 올려본 하늘도 그렇지만, 갑천에 비친 하늘도 더없이 파랗다. 수요일은 가급적 걸어서 퇴근한다. 구청에서 전민동까지 갑천벼으로만 걷거나 국립중앙과학관에서 도룡삼거리 방면을 가기도 한다. 2시간 가까이 걸린다. 퇴근 무렵 감천변에는 걷고 달리고,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일과를 마친 퇴근길인데도 오히려 활기가 느껴진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하고, 한 번은 걸어서 퇴근하자고 마음 먹은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사(私)적인 이유로는 조금이라도 몸을 더 움직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체중 감량도 절실하지만, 당장은 한 걸음이라도 더 걷는 게 목표다. 공(公)적인 이유로는 구민들의 일상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다. 버스 한 번 탄다고, 천변 조금 걷는다고 구민들의 일상과 가까워진다고 감히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관용차만 타고 출퇴근할 때와는 분명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심코 지나쳤던 건물과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 모를 들풀도 보인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생생한 표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달 말이면 민선 8기도 반환점을 돌게 된다. 전반기 2년을 결산하고 후반기 2년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 중이다. 우선 당장은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형식적이고 거창한 행사보다 일상의 현장에서 구민들을 만나려고 한다.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구민의 삶을 바꾸는 구체적인 민생에 주력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민선 8기 전반기를 마무리하고 후반기 시작을 알리는 행사를 과감히 취소했다. 대신 유성구 온천관리사무소와 금고동 자원순환단지, 한남대 대덕밸리캠퍼스 등을 비롯해 우리 구의 모습과 구민의 일상을 바꾸는 현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후반기를 시작할 계획이다.

 

혼자 힘으로는 안된다. 그래서 더 일 잘하고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기 위한 조직개편 작업도 마무리 중이다. 민선 8기 후반기를 맞아 증가하는 행정 수요에 대응하고 구민의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행정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이 이번 조직개편의 핵심이다. 일례로 노인인구 증가 등에 따라 노인장애인과를 신설하고, 한국 사회의 주용 화두인 인구정책 관련 업무를 청년정책팀에서 미래정책팀으로 이관했다. 아울러 우리 구가 주력하고 있는 어은, 궁둥 혁신 창업생태계 조성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일자리정책과에 전담 조직인 창업혁신팀을 신설했다.

 

자칫, '현장'과 '민생'은 식상하게 들린다. 위정자들이 서민 코스프레를 할 때 주로 내세우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진정성이다. 지난 2021년 퇴임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16년 재임 기간 내내 1주일에 한 번 단골 슈퍼마켓에서 직접 장을 봤다. 놀라운 사실은 이 가게의 단골손님이 메르켈 전 총리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장관과 여야의 거물 정치인들이 이곳에서 수시로 장을 봤다. 그런데도 베를린 시민들이나 언론은 이들의 행보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고위 관료와 정치권 인사들이 슈퍼마켓이나 시장을 찾는 게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들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정조는 백성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어 했다. 자주 행차를 나간 이유다. 행차 길에는 억울한 일이 있으면 징을 쳐 이를 알리는 격쟁(擊錚)을 허락했다. 언론도 없고 SNS도 없던 시절, 사실상 민생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으리라. 버스 타고 걷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메르켈과 정조까지 들먹이느냐는 지청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민선 8기 전반기를 마감하는 지금, 진정성 있는 리더십을 고민하는 게 큰 흠결은 아니라고 믿는다. 현재로서는 현장과 민생 말고 더 중요한 것을 찾기도 어렵다. 후반기에도 더 부지런히 달려볼 참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갑천변을 걸으며 다지는 각오다. 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